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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에니어그램(정신실/죠이선교회)

    2018.8.


    2018/08/17 - [그린나래/책으로] - [책]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에니어그램(김진희/평단)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에니어그램(김진희/평단)'과 더불어 에니어그램 입문서로 적합한. 거기다 보태어 개신교와 관점에서 에니어그램을 풀어낸 보기드문 책. 에니어그램은 보통 종교와 무관하게 혹은 천주교와 관련해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도 천주교를 통해서니까.


    대여해서 읽어봤는데 소장욕구 500% 카트에 담아놨음^^ㅋㅋ 용돈 여유 생기면 주문해야지! 


    p.23) 페르조나를 진정한 자신과 '동일시'하는 게 문제라는 얘기야. 내적 페르조나인 성격도 마찬가지야. 성격은 내가 필요해서 만들어 쓴 나의 얼굴이지 나 자신은 아니거든. '성격이 곧 나'라는 동일시가 강해지고 고착되면 마치 가면이 피부에 달라붙어서 내가 가면인지 가면이 나인지 모른 채 평생 주어진 배역대로 살게 된다고 봐. 그 거짓 자아에 대한 동일시는 진짜 나의 본성을 일깨울 필요조차 못 느끼게 만들어.


    p.37) 중심 또는 센터라고 부르지만 이것은 잘 발달했다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결핍으로 이해해야 해. 결핍을 느껴서 거기에 고착이 되었다는 거고, 거기에 너무 매여 있어서 그 중심마저도 제대로 못 쓰고 있다는 거다.


    p.54) 두려워하니까 사람이야. 애초부터 혼자 힘으로는 안전할 수 없는 존재가 피조물인 인간의 자리잖아. 그런데 자신의 안전을 자신이 지키겟다고, 지켜야만 한다고 온몸에 힘을 주고 사는 사람이 단적으로 6유형이라는 거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붙들고 씨름하는 거나 다름없지. 게다가 언젠가 네가 말한 것처럼 불안을 더 큰 불안으로 해결하려고 하잖아.


    p.60) 심리 유형 도구가 주는 일차적 유익은 '나'의 바깥으로 나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일 거야. 그야말로 남과 다를 뿐인 나의 일부분에 대해 괜한 열등감에 빠져 있고, 내가 잘못 이름 붙인 용어들에 민감해져 불필요하게 나를 방어할 때, 객관적 시선은 좋은 처방이 되지. 무엇보다 내게 있는 성격적 특성이 나만의 달란트라는 것을 인정할 때 한껏 자유롭게 되는 것 같애.


    p.85) 오필이가 그렇게 추구하는 '의미'는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적인 것에 있을 수도 있어. 아니, 적어도 오필이에겐 그럴 거야. 아직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고,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느껴도 삶에 뛰어드는 것 말이야. 진리이며 신비이신 그분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지. 그리고 당신의 손을 더럽히면서 병든 인간에게 손을 대고 만지시면서 치유하셨어.


    p.90) '같은 행동이라도 나와 저 사람의 동기는 이렇게 다르구나'를 진심으로 아는 것만으로도 성숙한 관계 맺기가 훨씬 수월해지니까. 다만, 타인을 향해서 쓸 때 판단하는 잣대가 아니라 이해의 수단으로만 들이대야 한다는 것!


    p.127)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자연스럽게 화내시고 화를 도구로 사용하여 선한 것을 가르치신 예수님을 기억해 보자. 그분이 보여주신 분노는 억압되어 부적절하게 삐져 나오는 방식도 아니고, 정제되지 않아 폭발적으로 표출되는 것도 아님이 분명해. 오직 사랑의 마음에서 기인한 분노, 상황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화야.


    p.137) 참된 강함은 자신의 연약함과 실수를 인정하는 데 있단다. 나의 연약한 그 자리가 참된 힘을 가지신 분께서 일하실 자리야. '내 밥그릇 내가 지켜야지 누가 지켜 주나'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힘을 놓지 않는 것은 다름 아닌 불신앙이야. 네 밥그릇, 이제껏 너의 힘으로 챙겨온 것 같지만 태초로부터 네 몸과 영혼의 밥그릇을 챙겨 오신 분은 따로 있잖아. 우리의 성격 너머, 우리 존재 그대로를 받아 주시는 그분께 진심으로 기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 우리의 힘은 뺀 채로 말야.


    p.153)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유형을 찾고 내적 여정을 걸어가는 거, 그거 대단한 거 아니야. 유형을 아낟고 해서 모든 어두운 것들을 확 벗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렇게 자기 자신도 모르던 속마음을 하나씩 알아 가고 인정해 가면 되는 거야. 나조차도 속아 넘어가던 마음의 숨은 동기를 하나씩 발견해 사랑의 빛 안에 비추는 것, 그것이 내가 에니어그램을 통해 안내하고 싶은 마음의 여정이란다.


    p.159) 유형의 설명을 듣다 보면 이 유형에도 좀 속하는 것 같고, 저 유형 얘기도 내 얘기 같고 그렇지? 결국 아홉 유형이 우리 안에 다 있는 거라고 봐. 평화롭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치? 내 안에 다 있지만 그 중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는 자아 이미지, 그걸 내 유형이라고 하는 거지.


    p.187) 날개는 대체로 20대 후반에 하나가 펼쳐져 굳어진다고 해. 대부분 사람은 하나의 주된 날개를 갖는데 주로 쓰는 날개에 따라 같은 유형이라도 크게 달라 보이는 거야. 또 날개를 펼쳐 쓰더라도 날개의 어떤 면을 가져다 쓰는지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번호 100사람이 모이면 100개의 유형이 있다고 생각하면 돼. 세상을 대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실제 유형보다 날개의 성격을 내보이기도 해. 이것도 번호가 헛갈리는 이유 중 하나겠지.


    p.193) 하고 싶은 얘기는, 내가 쓰는 날개를 가지고 내가 실제보다 더 나은 상태에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결국 이 여정은 에니어그램을 통해 '내가 이렇게 애쓰고 있구나'를 바라보고, 거저 주시는 그분의 사랑 앞에서 꽉 쥔 마음의 주먹을 풀고 무장 해제해 나가는 과정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구나.


    p.197) 화살표의 방향은 성장하기 위한 노력의 방향이라기보다는 상태를 알려 주는 지표로 이해하는 게 좋아.


    p.236) 우리가 자신을 성격과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성격은 우리 존재의 작은 부분이 될 거야. 성격이라는 거짓 자아에 가려졌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스러운 우리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면 우리는 성격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격을 부릴 수 있어. 즉 우리의 성격이 좀 더 투명해지고 유연해지며,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도구가 되는 거지. 그러나 문제는 한 번의 인식, 한 번의 경험으로는 성격으로 자기 삶에서 하나님 노릇 하려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거야.


    p.250)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자기 긍정, 타인 긍정의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정한 자기 긍정과 타인 긍정으로 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기 부정과 타인 부정의 과정이 필수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충분히 슬퍼함 없이 회개했다고 나서는 것을 '진정한 회개'로 안 쳐주는 것과 같습니다. 빛으로 가는 길은 그림자에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괜찮지 않아'라며 뼈아픈 실패를 받아들이던 그 순간이 바로 초대의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속사람에게서 온 초대장을 소파에 기대앉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 초대장의 제목은 "너는 괜찮지 않아"이니까요.


     p.261) 에니어그램의 근원적인 죄는 우리 인격에 새겨진, 뼛속까지 하나님이라는 과녁을 벗어나 있는 죄를 드러내고 보여 줍니다. 말하자면 내가 '원래 나'라고 알고 있는 성격 자체가 죄 된 모습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충격적인 사실인가요. 흔히 성격이라 불리는 우리의 내적인 '페르조나'가 우리 자신인 줄 알고 살 때 어떻게 치명적으로 하나님이라는 과녁을 벗어나는지를 에니어그램 아홉 가지 유형이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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