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물함 쪽의 벽이 부숴져 있었다.
그전에 사물함이 흐트러져 있는 것을 보고 살짝 신경이 쓰였는데
이젠 벽이 부숴져 있다고 하니 완전 열폭.
안그래도사물함과 관련해서 옆반 선생님께 죄송한 것들이 많았는데
옆반 아이의 제보로 오셔서 목소리를 높이시니 대략 난감하기도 했다.
한껏 인상을 구기고 종식이와 원이에게 누구짓이니? 어택을 날리니
아이들의 표정이 구겨지고 흔들린다.
아무런 대꾸도 없으니 더 화는 나고 대체 누구 짓이길래 아무 말도 못하나 싶어 교실로 고고씽.
찬바람 쌩하니 불게 교실에 들어가서 부순 놈 누구냐고 호통치니 ㄷㅎ이가 나오더라구.
다른 반 아이가 흐트러뜨린 거 바로 잡으려다가 벽을 부수게 됐다고 이야기하고
ㅇ이와 ㅈㅅ이와 ㄷㅎ이 교무실에 데리고 가서 일단은 경위서 쓰게 하고...
그렇게 사건을 일단락하고나니 두 가지 마음이 싸운다.
나서줘서, 그리고 일부러 한 게 아니라 다행이고 고맙다는 마음과
이게 정말 진실일까 의심하는 마음...
아무래도 처음 ㅇ이와 ㅈㅅ이의 표정이 석연치가 않아서 계속 마음에 남는다.
그러다가 집에 와서 새롭게 드는 마음은...
속이면 어쩌겠는가...
할 수 없지...
얼마전까지는 이 마음이 회피요 포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것과 한 끗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례시간이 되니 대뜸 "ㄷㅎ이 잘못이 아니잖아요!"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차분히 아이들에게 일의 순서에 대해 소개하고
만약 먼저 선생님이 알았다면 너희들을 두둔하고 보호해줄 수 있었겠지만
선생님은 일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누가 했는지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앞으로는 어떤 일이든 먼저 이야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ㄷㅎ이에게는 개인적으로 3번 정도 이야기했다.
일부러 한 것이 아니라, 그리고 좋은 뜻으로 시작한 거라서 다행이라고.
여전히 믿지 못하는 마음들이 불쑥불쑥 쏟아진다.
하지만
믿는 만큼 믿음 갈 행동을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아이들을 믿어주지 않는다면 누가 아이들을 믿어줄까, 싶기도 하고.
학교에선 매일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오늘만 해도 우리반에선 ㄷㅎ이 사물함이 털려 실내화가 사라지고(나중에 발견됨),
1교시 가정시간에 사용했던 스펀지와 쪽가위가 사라졌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벽이 뚫렸다.
그 가운데서 내가 어떤 모습을 해야 내가 바른 모습으로 서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좀더 경력이 쌓이면, 선생님이란 이름이 더 자연스러워지면
그때는 알 수 있을까?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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