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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의 시선(김태현/교육과실천)
    2020.10.

    존경하는 김태현 선생님의 신간. 국어교사로서의 부족함을 감히 '나는 꼭 국어가 아니어도 괜찮아'라는 말로 포장해온 나. 국어교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할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해준 두 선생님이 계시는데 김태현 선생님과 임진묵 선생님이시다. 두 분 모두 좋은교사 수업코칭연구소에서 조금더 가까이 만나뵐 기회가 있었고, 알아갈수록 더 닮아가고 싶은 선생님들. 지금의 내가 있는 것도 수업코칭연구소에서 함께했던 시간, 함께했던 사람들이 있는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갈 꿈을 꾸게되는 것도.

    위로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어떤 장에서는 눈가가 시큰해졌고, 어떤 장에서는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 역시나 이번에도 '지금' 나에게 필요한 성찰을 던져주시는 김태현 선생님.

    조금더 '나'에게 머물러봐야겠다.




    p.35) 가만 보면, 교육의 시선은 속보가 아니라 완보다. (중략) 지금은 아니지만, 때가 되면 철이 들고 사람이 될 것이라는, 교사 특유의 낙관적인 기대가 있었다. 사람에 대한 기대. '지금은 아니지만, 때가 되면 좋은 어른이 될 것'이라는 완보의 시선이 있었기에 이들을 끝까지 품었다.

    p.53) 남의 시선에 길들여지지 않고, 내가 나를 정의하는 태도. 내가 걸어가는 길을 남의 왜곡된 시선으로 보지 않고, 내 시선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주체적인 삶의 시선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사로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인가? 각자 나름의 답을 내려야 한다. 물론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교사들이 미래에 대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 더 많이 표현하길 바란다.

    p.56) '넛지'라는 말이 있다. 살짝 찌르기 정도를 의미하는데, 나는 학생들의 생각에, 삶의 결정에 넛지 정도 하는 교사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말이 '영감'이다. 창조적인 영감을 줘서 학새들 스스로 자기 삶에 주체가 되게 하는 교육자. 이 정도가 딱 내가 듣고 싶은 말이다. 삶을 책임져 주는 것은 내 역량도 안 되고, 부담스럽다. 교사라는 직업에서 할 수 있는 헌신과 모방에서 딱 평균 정도만 하고 싶은 게 내 심정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p.64) 이것은 '펀치드렁크' 증후군과 같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무하마드 알리는 젊어서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유명 복싱 선수였지만, 말년에는 파킨스 병을 앓게 되어 기억력이 감퇴하고 손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젊어서는 이름을 날리던 복서가 말년에 자신의 손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이유는, 젊었을 때 펀치를 많이 맞아서 뇌손상이 왔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젊었을 때의 충격이 노년에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비단 알리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육체적인 충격을 많이 받는 아이스하키, 복싱, 미식축구 선수들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이를 펀치드렁크 증후군이라고 한다.

    p.68) 우리가 나로 산다는 것을 내 감정과 욕망에 충실히 살 것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만 맞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조직, 공동체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p.87) 운동을 하다가 다쳐 도수치료를 받으러 가면, 도수치료사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우리 근육은 스스로 치료하는 힘이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따듯한 손으로 만져주고, '여기가 아팠구나'라고 뇌에서 인지만 해도, 근육을 풀어주는 물질이 몸에서 분비되어 스스로 치료한다고 한다.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게 위대하다. 늘 내 삶이 아프고 초라한 것 같지만, 그 아픔을 수많은 예술 작품으로 들여다보기만 해도, 삶은 우리에게 위로자들을 보내준다. 내 삶이 늘 작은 것 같지만, 나를 통해 이뤄지는 수많은 평범한 기적이 있다. 내 삶에 찾아온 아름다움, 내 삶에 이미 존재하는 치료의 능력을 믿고, 나만의 심미안을 찾아보자. 나는 약한 듯하나, 강하다.

    p.90) 심미안은 이런 것이다. 사물 너머에 있는 또다른 맥락을 살펴보면서 삶에 본질을 다시 깊이 찾는 시선, 이것이 심미안이다.

    p.105) 가장 미래적인 교육은 우리가 잃어버린 이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심미안을 찾게 하고, 삶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마음 근육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이고, 이것이 수업의 목표이어야 한다. 이런 수업을 하려면, 교사가 먼저 나만의 심미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 감정에 울림을 주는 영감 있는 콘텐츠를 잘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p.132) 온라인 수업이 한계가 많지만, 오프라인 수업보다 좋은 것이 무엇일까?
    문학작품을 외운다는 느낌이 아닌 즐긴다는 느낌을 어떻게 줄까?
    학생들이 같이 참여하고 소통하는 느낌을 어떻게 줄까?

    p.134) 교사의 삶과 수업은 연결되어 있다. 교사가 살아온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내 한 차시 수업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미래형 수업을 하라고 할 때, 남의 수업을 따라가기보다는 내가 그 수업에 녹이고 싶은 느낌이 무엇인지를 먼저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수업은 공학이 아니라 예술적 요소가 있어서, 교사만의 독특한 감성이 묻어나오게 되는데, 그 느낌을 살리는 수업이 오히려 몰입감이 있고, 그런 수업에서 교사는 자존감을 회복한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를 흉내내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대로 수업을 하면, 기계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교사의 에너지도 떨어지게 된다.

    p.149) 결국 시난이 지날수록 우리는 안다.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하면서 단순하게 수업하는 것이 더 교육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중략) 중요한 것은 수업에서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이지, 수업의 겉치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 중요한 것은 수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다.

    p.159) 사람의 의미의 존재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찾을 때 힘이 나는 존재다. 교육은 더욱 그렇다. 가치를 지향하고 의미를 창출하는 작업이기에, 나 스스로 존재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참으로 허무하다. 우리는 설사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고, 교육적 메시지가 잘 찾아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내 생각을 가만히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메시지를 찾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하는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교사로서의 자존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p.159) 교육적 메시지는 이론이 아니다. 교사가 내 삶을 살면서 구현하고 싶은 가치, 의미다. 딱 뭐라고 집혀지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하나의 경향성,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삶의 메시지를 처음부터 하나의 단어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교사는 많지 않다. 그래서 내 삶의 메시지를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보다는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을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내가 했던 수업, 내가 썼던 글, 내가 만든 학습지 속에 있는 내 의도와 맥락을 살피다 보면, 그 속에 내가 추구했던 메시지가 보인다.

    p.187) 미래 교육의 가장 모델로 뽑히는 다빈치도 늘 기록을 했다. 생각, 질문, 관찰한 내용 등을 끊임없이 적었다. 그래서 그의 노트는 자그마치 7,200쪽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는 다빈치의 뛰어난 천재성에만 주목할 뿐, 끊임없이 기록하는 그의 습관을 보지 않는다. 그의 천재성은 늘 기록하는 습관을 통해 완성된 것이지 태어날 때부터 천재는 아니었다.

    p.188) 교사도 마찬가지다.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각의 줄기를 쫓아가는 사유의 힘을 길러야 한다. 나같이 얄팍한 사람이 그래도 이만한 역량을 가지게 된 것은 단연코 글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문자 언어로 생각을 나열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행위이다.

    p.215) 나는 나로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남과 함께 완전해진다. 이로써 내 마음과 시야가 더 넓어져서 '나'에서 '우리'가 되어가는 것. 이것이 지식을 넘어서는 삶의 진짜 배움이다. 교사인 우리가 이것을 자기 삶으로 먼저 도전해야 할 때다. 뻔한 말이지만 이 말은 진리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오래 간다.'

    p.239) 교사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기대이다. 사람에 거는 기대가 있어야지 교사들은 끈기를 가지고 교육을 한다. '내가 하는 수업이 그래도 우리 학생들을 의미 있게 변화시킬 거야. 내가 상담하는 학생이 앞으로 그래도 좋은 어른이 될 거야'라는 희망이 있어야지 교사들은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간디학교의 교가,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이 안에 교육의 본질이 다 녹아 있다. 교사의 전문성은 화려하게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꿈꾸게 하고, 학생들이 희망을 노래하게 하는 것이다.

    p.282) 어떻게 하면 우리도 이 선생님처럼 내 감성과 메시지를 수업에 넣을 수 있을까? 그것은 교사 스스로 교과 지식이 가지는 방향성을 고민하면 된다. 우리가 가르치는 교과 지식은 구조와 방향으로 이뤄져 있다. 구조란 그 지식이 가지고 있는 형식과 체계, 이론을 말한다. 소위 말하는 객관의 영역이다. 예를 들어, 시에 대한 수업을 한다면 시의 정의, 시어의 특징, 시에 쓰는 수사법의 종류 등은 구조에 관한 지식이다. 이미 많은 사람으로부터 검증된 지식을 우리는 수업 시간에 먼저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구조를 그대로 전달만 하면 수업은 정보를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데만 그치게 된다. 지식을 살아 있게 전달하려면, 학생 스스로 그 지식을 살멩서 잘 활용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지식의 방향이다. (중략) 교육과정에 나와 있지 않지만, 교과 지식을 바라보는 교사의 시선에 따라서 같은 지식을 배워도 다양한 방향으로 수업은 변주될 수 있다.

    p.300) 학교에서 교사는 서로 연결되는 존재여야 한다. 서로 배움을 주고, 배움을 받는 커뮤니티여야 한다. 그 시작은 터칭과 씽킹에서 온다. 그래야 우리 수업 안에서 감성과 지성의 열림이 일어난다. 이런 연결과 사유의 경험 없이 학생들에게 좋은 수업을 하기란 힘들다.

    p.358) 특히,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 삶의 결핍을 잘 봤으면 해요. 나에게 있는 결핍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위로하고 채우면서, 그 경험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면 좋을 거같아요. 제가 수업나눔, 수업친구, 소소한 책방, 북콘서트 등 기존에 교사 그룹에서 실시하지 않던 것을 하게 된 것도, 내 안의 결핍 그리고 교사 안에 있는 결핍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나온 거예요.

    p.380) 교사는 어떤 존재인가? 저는 절망 속에서도 교육에 대한 꿈을 잃지 않고,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삶의 무게에 힘들어하는 상황에서도 하나의 줄을 가지고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 그 사람이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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