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1.11.06 강내교회 주일오전예배
본문: 빌립보서 4장 1~9절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1.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2.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3.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4.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지친 마음을 가지고 갈까말까 수없이 고민하다가 향한 예배.
지하철이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기차가 지연되지 않았다면, 버스가 제때 오지 않았다면 아마 드릴 수 없었겠지.
신랑 와이셔츠까지 다 다리고 찬찬히 나왔음에도ㅡ가고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던 걸까?ㅡ 무사히 도착.





하늘시민권자로서의 삶.
'어디서'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가느냐이다.
한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원수로서 살아가는 자가 분명히 있다.
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바울사도는 '나를 본받으라'고 당당히 이야기한다.
과연 자신의 무엇을 본받으라고 한 것일까?

1)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분명 따르는 마음도 동일하고 따르는 대상도 동일한데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서로 적을 두게 될 때가 참으로 많다.

2)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안에 있을 때, 특히 주의 일을 할 때 내 안에 기쁨이 있는지 점검하기.
ㅡ내가 학교에서 근무하는 시간도 분명 주의 일을 하는 것인데 내 안에 기쁨이 있었던가?
   혹시 그냥 하루하루 시간을 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3)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세상은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는 것을 잊지 말자.

4)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어떤 상황에서든 반응하는 것은 결국 나의 몫이다.
나의 반응을 통해 내 인격을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면 사람에게 분을 낼 이유가 없다.

5) '무엇에든지' 참되게 경건하게 옳게 정결하게 사랑받게 칭찬받게 하라.


하늘 시민권자로서의 삶.
분명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야지.
마음이 아니라 행동만 바뀐다면 그것은 외식, 속이는 것이다.
나눈 것을 기억하면 '선행'이지만 잊으면 그것은 '거룩'이다.
'선행'은 땅의, 사람의 기준이고 '거룩'은 하늘의, 하나님의 기준이다.
우리의 도착점이자 하나님의 기준은 결국 '거룩'이다.

사람은 절대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그저 사랑의 대상일 뿐임을 잊지 말자.
이것을 잊지 않으면 배신당할 이유도, 가슴아플 이유도 없다.

그물과 염려.
싸우는 대상이 아니라 잘라내야 할 대상이다.
힘빼지 말고 용쓰지도 말자.





. . . 말씀을 들으며 '선행'과 '거룩'에 대한 내용이 특히나 마음에 콱 박혔다.
그렇구나. 나는 '선행'을 행한 사람이고 싶었구나.
다른 사람들이 나의 선행을 알아주길 원했고 칭찬해주길 원해서 용서한 '척'하고 있었다.

정말 내 안에 용서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시간.
인정하고 나니까 정말로 평안해졌다.
그동안 누리지못했던, 생각조차 못했던 그런 평안.
그리고 벅차오는 가슴.

어렵지만 '거룩'에 한 걸음 가까워지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까지 받아온 사랑이 너무 크기에
이제는 진정한 용서로 나아가려고 한다.
진정한 용서는, 내가 용서했단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것이겠지.

그랬을 때 참평안이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 늦지않게 깨달은 것 같아 다행.
조급해하지 말자.
주께 맡기자.
그 아이를 위한 염려는 정말 그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합리화와 안정을 위한,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인정하자.





오늘도 세상이 줄 수 없는 큰평안으로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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